[Insight]북한 여성의 결혼과 출산: 북한도 저출산 대책을 고심 중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2024년 0.6명대로 떨어지며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인데요. 놀랍게도 북한에서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알려진 북한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글은 2024년 7월, 북한학 전문서점 이나영책방에서 열린 특강 <‘처녀어머니’들의 반란, 북한 여성들의 출산 기피>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특강의 강연자인 유성애 님은 석사 논문 「북한의 인구 재생산 담론 변화 연구 - 여성의 임신・출산을 중심으로」을 통해 북한 여성들의 출산 기피 현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 여성들도 결혼을 미루고 있다?

출처: Lindsey Miller

북한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1.38명1입니다.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높지만, 인구 유지에 필요한 기준인 2.1명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북한에서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겁니다.

"결혼하는 여자는 바보, 아이 낳으면 머저리"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결혼과 출산이 당연한 삶의 과정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결혼하지 않거나 출산을 미루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북한은 1946년에 ‘북조선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제정해 여성의 법적 권리를 보장했음에도, 여전히 가정 내 역할과 사회적 요구가 여성에게 더 많이 부과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 글에서는 북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선택이 단순히 인구 통계의 변화로만 볼 일이 아니라,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움직임일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해요. 그리고 이런 북한 여성들의 선택이 북한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또 남한에서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북한 여성의 역할

북한 여성들의 역할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성평등 관련 논의가 점차 보수화되었고, 50~60년대에는 인구 감소와 경제 회복을 이유로 다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펼쳐졌죠.

70년대 공업화 시기에는 여성들을 노동 현장에 동원하기 위해 출산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979년에는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연구에 전념한 여성 과학자 백설희가 김일성 훈장을 받으면서, 당시 북한 여성들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죠. 

기존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남성들이 국영 공장에 출근하고 여성들이 집안일과 육아를 맡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배급이 끊기면서 많은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장마당으로 나서야 했어요. 이 과정에서 북한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경제 활동의 주체가 된 여성들

출처: Lindsey Miller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북한의 여성들은 경제 활동의 주체로 자리잡았습니다. 과거 계획경제 시기에는 남성들이 주로 직업을 가졌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성이 '직업군'이 되고 남성은 월급 가치가 없는 '무직업군'이라 불릴 만큼 경제 활동의 중심축이 바뀐 것이죠.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북한 가정의 약 80% 이상이 여성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합니다.2 남성들이 받아오는 배급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죠. 같은 보도에서는 일부 남성들이 '낮 전등'이나 '멍멍이' 같은 별칭으로 불리며 가정 내 입지가 좁아졌다는 증언도 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성들도 생계를 돕기 위해 장사에 나서거나 가사 분담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에는 여전히 봉건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이 남아 있어요.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자, 북한 당국은 여성성을 강조하는 정책이나 시장 억제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40세 미만 여성의 장마당 장사 금지나 여성의 자전거 이용 금지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자전거는 장마당 장사를 위해 꼭 필요한 이동 수단이었기에, 이런 규제로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달라진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

북한 여성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어요. 경제권은 여성들이 쥐고 있는데, 여전히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만 요구하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인지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 중에는 뇌물을 써서라도 이혼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2

출처: Lindsey Miller

통일학연구원 박민주 교수는 북한의 일상생활을 ‘변화와 지속의 공존’이라고 표현했습니다.3 여성에 대한 인식도 여기에 해당하는데요. 과거에는 결혼이 늦어지면 "언제 결혼하냐"는 질문이 따라왔고 아이를 낳으라는 압박도 심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전문가 인터뷰4에서는 "배급 체계가 무너진 이후 생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사회주의 복지마저 사라지면서 개인의 부담이 커져 젊은 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피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북한 여성들은 경제 활동의 주체가 되면서 결혼과 출산을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과 놀랍도록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학에서 드러나는 사회 현상

북한의 사회 변화는 문학 작품과 대중문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20년에 발표된 리춘미의 단편 소설 『사랑하라』에서는 무용수인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임신 3개월 차인 아내에게 남편이 낙태를 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북한에서도 임신중절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에요.

2021년 3월 『조선녀성』에 실린 만화 『거울』에서는 25세의 여성이 박사 학위를 마친 뒤에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를 통해 북한의 청년층에서도 결혼보다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문학과 대중매체는 철저한 검열과 관리를 거쳐 제작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내용이 작품에 담겼다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실제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북한 여성의 권리와 역할 변화가 가져올 가능성

북한 여성들의 권리와 역할이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필요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이제 삶의 가치관과 방식을 바꾸는 수준으로 진화했습니다. 최근에는 결혼 없이 동거하는 부부들도 생겨나는 등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서 벗어난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죠.

이러한 변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라는 점입니다. 외부의 개입이나 명확한 조직적 운동 없이, 일상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변화이기 때문이죠. 북한의 여성들이 앞으로 사회 전반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북한의 정치와 사회 구조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1. BOK 경제연구. 2023. "[제2023-29호] 북한이탈주민 조사를 통해 본 북한 출산율 하락 추세와 남북한 인구통합에 대한 시사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2. 워싱턴-정영. 2024. “[경제와 우리 생활] 장마당 주역 북한여성의 권리신장” 자유아시아방송
  3. 이유민. 2024. "[이화랑연구할랩(Lab)] 북한의 일상생활 연구를 통해 통일로 나아가기" 이대학보
  4. 워싱턴-천소람. 2024. “[북한 저출산] ① 결혼 대신 동거, 아이는 한 명만” 자유아시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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