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독일에서 다시 보는 탈북민의 이야기, 소설 <새벽의 그림자>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이주'와 '경계'의 문제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소설 새벽의 그림자는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이 질문을 던집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죠. 독일이라는 새로운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탈북민에 대한 익숙한 논의를 벗어나, 디아스포라와 이주민의 보편적 고민으로까지 시선을 확장합니다. 단순한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죠.

c3fbdc0e32320.png


북한을 떠난 후,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소설은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북한 출신 대학생 윤송이가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내리지만, 전직 경찰 출신 연구자 변해주는 사건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직감합니다. 변해주가 윤송이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여러 인물을 만나고, 탈북 이후의 삶이 얼마나 다층적인지를 하나 둘씩 알게 됩니다. 탈북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며,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금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죠.

특히, 변해주의 기억 속 인물인 용준의 이야기는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그는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했지만, 이곳에서도 결코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북한 최고 의학대학인 평양 의대를 출신임에도 한국에서는 단순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 속에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그의 삶을 통해 독자는 '신분 자체가 두려움이 될 수 있는 탈북민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해요.


서로를 낯설게 만드는 경계와, 그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새벽의 그림자는 '경계'의 문제를 여러 인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풀어냅니다. 장춘자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정착한 그녀는, 단순히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고향에서 ‘바이러스 물질’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기쁘게 결혼 소식을 알리러 갔다가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독일에 다시 돌아오죠. 그 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부모를 잃은 북한 출신 아이를 보살피는 역할을 자처합니다. 장춘자는 ‘북한 출신 아이를 돕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이의 의지와 관계없이 독일까지 오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국적과 출신을 넘어, 사람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을 그려냅니다. 윤송이 사건 이후, 남북 출신 인물들이 함께 그녀의 아이를 돌보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지점에서 독일 사람인 뵐러 박사의 존재도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독일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동서독 간의 갈등을 연구하면서, '사회 통합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라는 걸 깨닫습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과의 공존이 단순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와 노력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짚어주죠. 이는 비단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예요. 뵐러 박사는 ‘사람이 사람을 바꾼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저는 이주민이 되어본 적이 없는데 제가 어디서든 다 이주민이었던 거예요. 예를 들어 독일에서도 저는 한국 출신의 이주민, 한국에서도 서울에 있으면 저는 광주 출신의 이주민. 어디서든 인간은 이방인이구나. 그러면서 저한테는 이주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어요.” - 최유안 작가 은행나무 출판사 인터뷰1

우리는 어디에서든 이방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경계를 허무는 것은 '남'이 아닌 '나'의 선택입니다. 새벽의 그림자는 탈북민의 삶을 조명하는 동시에, 이들이 겪는 문제를 '나의 문제'로 확장합니다. 책의 결말에서 변해주는 연구자로서 사건을 추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변화의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은 여전히 어딘가 낯선 존재로 여겨지지만, 실상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연결점'을 만들어 주는 작품이에요. 낯선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독자 자신의 인식을 확장하도록 유도합니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난 후 남는 것은 윤송이의 비극이 아니라, 변해주가 만들어 낸 변화의 가능성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소설을 덮는 순간,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덧붙이는 말

"한 사람의 경험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의 경험은 그 한계를 늘 뛰어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읽습니다. 인간의 유일한 무기는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성이 발달해 있다는 것, 그들의 슬픔의 둘레에 잠깐 닿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벽의 그림자, p.217)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3만 4천 명의 탈북민에게 ‘나는 어디에서 왔다’고 말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더 큰 힘이 있습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시야를 넓히려 노력하는 것,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와 같은 작은 실천이 모여 변화를 만듭니다. <새벽의 그림자>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경험을 넘어선 세상을 만나보세요.



1. 은행나무출판사. 2024. “동독과 서독, 남과 북. 잊지 않기 위해 썼습니다” 유튜브.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Visit LiNK International
국제인권단체 링크(LiNK, Liberty in North Korea) 한국지부 대표 : 박석길 고유번호 : 106-82-65990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