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링크가 만난 사람들: 생일마다 모금하는 튜터, 기억을 건축으로 번역하는 학생

2025-10-23

낯선 곳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존재'라는 감정을 자주 마주합니다. 이 글은 이주 경험을 공유하는 두 여성이 링크의 영어회화 프로그램 렐프(LELP)에서 만나 관계를 이어온 이야기입니다. 영어 공부와 북한 인권을 주제로 대화하며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었고, 현재 각자의 전문 분야에 관심사를 접목해 일상 속 행동으로 실천해 오고 있어요.

 

6ae5ce53fdfdc.jpg링크의 영어 회화 프로그램 렐프(LELP)의 버디인 장미님과 혜원님


혜원님은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떠났을 때, 외국인이라는 위치를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해내고자 다짐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국제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미님은 열 살에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왔어요. ‘스포츠’, ‘아이돌’과 같은 외래어를 새로 익히는 것으로 시작해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두 사람은 렐프 온라인으로 처음 만났어요. 영어 수업은 곧 각자의 근황과 고민 공유로 이어졌고, 조언과 응원이 오갔습니다. 어느새 서로를 지지하는 언니 동생이 되었죠. 


북한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출발선

열 살의 장미님은 ‘여행 간다’는 말만 믿고 밤길을 나섰어요. “새벽에 어머니 등에 업혀서 압록강을 건넜고”, 어느 순간 한국을 향해 이동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한국에 도착해서는 언어가 첫 장벽이었습니다. “스포츠가 뭐야? 아이돌이 뭐야? 지디(GD)가 뭐야?”라고 하나하나 친구들에게 물으며 일상을 배워 갔어요. 낯섦의 영역을 하나하나 걷어내는 동안, 장미님의 관심은 공간으로 향했고 그 시선은 훗날 ‘압박–빛–해방’의 설계로 이어졌습니다.

혜원님은 중학교 3학년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새로운 학교와 문화, 익숙지 않은 속도의 영어 앞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먼저 정했죠. “나는 외국에서 온 외국인이고… 최선을 다하되 똑같을 수 없음을 빠르게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해내자고 생각했어요”. 그 다짐은 불필요한 압박을 덜어 주었고, 관계를 천천히 넓히는 여유를 만들었어요. 돌아온 뒤에도 그는 그 태도를 놓지 않았고, 교실과 링크를 잇는 오늘의 실천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 렐프

처음 만남은 온라인 레벨 테스트였어요. 화면을 사이에 두고도 장미님의 생기가 '화면을 뚫고 나오는' 듯했다고 혜원님은 말합니다. 원래 목적은 영어 수준 확인이었지만, 마음은 '친해지고 싶다, 빨리 (수업) 잘하고 싶다'로 기울었죠. 이후 수업에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자연스레 안부가 오갔고, 장미님은 자신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말하게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혜원님은 “진심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깊게 고민해주시고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라는 장미님의 말을 이어, ‘몇 년 먼저 걸어왔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나눴다'고 덧붙입니다. 언어 연습은 일상의 대화로 확장되었고, 그 대화가 서로를 단단히 지지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홍대 건축학과 우수상: 장미님의 북한인권 졸업작품

247c69c5cfed9.png장미님의 졸업 설계 작품인 메모리얼 파크


장미님은 “북한인권이 결국 내 정체성”이라 여겨 이를 건축으로 구현했어요. 동선은 입구–메인–출구로 이어집니다. 메인 공간에는 가운데만 빛이 떨어지고, 천장의 거꾸로 된 돔이 점점 내려오며 은은한 압박을 만듭니다. 중심에 설수록 외부는 보이지 않게 설계했죠. 대신 수공간의 반사를 통해서만 바깥을 인지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에서 사람들이 ‘매개’를 통해서만 외부를 접하는 현실을 형태로 번역한 장치예요.


56d624542c2aa.jpg공간의 한가운데로 갈수록 압박감을 느끼도록 설계한 건축물 내부 구조


출구는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깥을 바라보며 힘겹게 오르면 넓은 공원이 펼쳐지고, 압박에서 해방되는 감각이 남죠. 하강 구간의 벽에는 이름이 빽빽히 채워져 관람자의 눈높이를 가득 메웁니다. 낯선 이에게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세 글자’의 연쇄로, 탈북민에게는 남겨진 가족의 이름으로 다가오죠. 장미님은 이 작업으로 반에서 한 명만 받는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압박–인식–해방’의 흐름으로, 알지 못한 채 침해당하던 인권의 감각을 건축 언어로 설득력 있게 드러낸 결과였어요.


e9ca2ec7b7d74.png돔 내부에 꽉 채워진 북한 사람들의 이름


삶의 무대인 혜원님의 교실, 그리고 링크

혜원님은 지금 국제학교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칩니다. 대학 시절엔 교육봉사 NGO에서 인턴을 하며 미혼모학교 및 다양한 형태의 대안학교를 만났고, 그 현장에서 ‘가르침은 곧 삶의 연결’이라는 감각을 얻었죠. '내가 이 아이의 삶에 인풋을 주는 사람'이라는 벅참과 함께, '삶이 연결되기 시작하면 의미가 크다'고 말합니다. 학교와 링크. “사랑하는 두 단체를 어떻게 더 이어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그의 일상에 붙어있어요.

그 질문은 곧 교실 프로젝트로 번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려운 부분을 도울 수 있을까?', '커뮤니티를 위해 누구를 돌아볼까?'. 노숙인, 장애인, 노인, 아동, 임산부, 그리고 난민. 난민이라는 카테고리 아래 ‘탈북민’이 놓였고, 학생들은 “선생님이 (관련 활동을) 직접 하고 있다고?”라며 눈을 반짝였죠. 학부모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혜원님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조금씩 알립니다. 교실과 링크 사이, 배움과 연대의 통로를요.


채용 공고에서 생일 모금까지

혜원님은 채용 공고 사이트에서 링크를 처음 만났어요. 코로나 시기라 이직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이었고, '직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작게 후원을 시작했죠. 링크의 젊고 감각적인 콘텐츠, ‘우리 생애 내에(Within Our Lifetime)’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시선이 갔고, 링크와 한 배에 타서 지원하다보면 언젠가 북한 주민들이 자유로운 날이 올 때 그 결과의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다음은 ‘생일 모금’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자주 보던 방식과 링크의 사례를 떠올리며 시도했지만,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문화라 망설임이 컸죠. '너무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정말 소소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도 있었고요. 남편의 응원이 마지막 퍼즐을 맞췄습니다. 시작하고 보니 반응은 예상 밖이었어요. 오래 연락 없던 친구에게서 “덕분에 수월하게 참여했다”는 메시지가 왔고, 많은 이들이 선한 일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검증과 선택의 수고를 줄여주는 출구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혜원님은 매년 생일을 ‘참여의 날’로 바꿉니다.



생일 모금 프로젝트

혜원님의 다섯 번째 생일 모금 프로젝트


두 사람의 변하지 않는 마음: 렐프를 넘어 일상으로

학기가 바뀌어도 마음은 흩어지지 않아요. 혜원님은 “다음 학기 참여를 못해도 멀어지지 않는다”, “각자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장미님도 “프로그램이 끝나더라도 연락을 계속 하면서 지낼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죠. 이름표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언니와 동생으로 일상이 연결되었어요. 수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배움은 끝난 것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님에서 ‘나의 길’로

두 사람의 여정은 경계의 한복판에서 시작됐어요. ‘외국인’이라는 자리, 사소한 단어부터 다시 배우는 날들, 서로 다른 속도를 견디는 시간들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죠. 멈추지 않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장미님은 ‘압박–빛–해방’의 구조로 기억을 재구성했고, 혜원님은 교실에서 링크를 알리며 지인들과 함께하는 후원으로 연결을 넓혀갔어요.

정체성을 고민하며 겪어온 ‘이도 저도 아님’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의 구간이었어요. 두 사람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며, 비슷한 경험을 지닌 이들을 만나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건네고 있습니다.


참여 안내|후원으로 연결을 넓혀요

이야기의 다음 장을 함께 써요. 오늘의 감동이 일상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기후원을 시작해 주세요.

두 사람의 배움과 실천이 이어지듯, 여러분의 응원도 일상에서 계속될 수 있어요.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또 다른 혜원님과 장미님을 만나게 하고, 세상에 더 많은 따뜻한 연결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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