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장마당 세대는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북한을 떠납니다 | 찾아가는 북스토리 토크콘서트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건 북한 청년도 남한 청년도 같지 않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이주민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21년간 유학생 수도 세 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1 북한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회 전반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면서 결혼과 출산을 늦추는 경향이 나타나고2, 최근에는 평양에서 '유학'의 개념으로 한국행을 선택하는 탈북 청년의 사례3도 생겨나고 있어요. 이렇게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요?

2025년 4월 2일,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찾아가는 북스토리> 토크콘서트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날 주제는 “나의 갓생일지: 경제적 자유를 향한 두 가지 시선”으로, 2023년 목선을 타고 한국에 온 북한 청년 강규리와 남한 청년 크리에이터 주긍정의 대화로 진행되었습니다. 강규리님은 북한에서도 자신의 사업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으며, 능력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해요. 이전과는 다른 이유로 한국행을 택하는 장마당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요즘 세대’의 폭을 넓혀봐요.

링크(LiNK) 한국지부 블로그 -장마당 세대는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북한을 떠납니다 | 찾아가는 북스토리 토크콘서트

“장마당 세대의 청년으로서 솔직하게, 북한말로는 ‘허심하게’ 오늘 여러분들과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장마당세대는 북한의 밀레니얼 세대로, 1990년대 중후반 국가 배급 체계가 무너지면서 장마당(시장)을 통해 생존했고, 시장 경제에 익숙하며 체제에 비판적인 성향을 지닌다.


국제 탁구 대회에서 금메달 따는 게 목표였던 소녀

평양에서 체육 대학에 다니던 규리님는 경제적으로 부족한 면이 없었다고 해요. 실제로 북한 대학 입시는 성적은 물론 출신 성분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4, 직접 말하지 않아도 집안 배경이 탄탄하고 여유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어요. 탁구 전공으로서 국제 경기 나가서 메달을 따고 싶었지만,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훈련하는 건 언제나 힘들고 어려웠어요. 무엇보다 탁구한다고 해서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어 보였죠. 


마인드부터 사업가, “엄마, 우리 배 사자!”

할머니께서 종교를 믿으신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평양에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어요. 이전의 삶과는 확실히 달라진 날들이었죠. 이전의 생활을 되찾기 위해, 처음에는 탁구 레슨을 하며 돈을 벌었어요. 하루 5천 원도 벌기 힘든 사회에서 15만 원을 벌 정도였다고 해요. 그러다 누군가 ‘선주가 되면 하루에 5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전해주었고,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본 규리님은 어린 나이에 배를 갖기로 합니다.


“엄마, 우리 배 사자! 배 사면 돈도 벌 수 있고 나중에 한국도 갈 수 있어!”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충격을 받으셨어요. 하지만 배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며 어머니를 설득해 마침내 배를 사게 됩니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미국 달러 기준으로 70~100불까지도 벌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5~6명의 사람을 고용해 배를 운영하며 사업을 이끌었습니다.

어린 여성이 배로 사업하는 걸 알게 된 감찰기관은 검열을 시작했고, 규리님을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감방에 들어갔던 경험도 있지만, ‘돈이면 다 된다’는 걸 알기에 두려움이 없었어요. 북한에서 경제력을 갖추는 건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규리님 가족의 경제적 역량은 2009년 북한 화폐 개혁 때 한 번 더 발현되는데요. 당시 정부에 국권 100원을 내면, 신권 1원으로 바꿔주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 모은 사람들을 벼락 거지로 만드는 정책임을 깨달은 규리의 어머니는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을 모으셨다고 해요. 정권은 당연히 주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고요.


* 통일부에 따르면, 2011년 이전까지 북한 주민들의 주요 거래 화폐는 북한 원화(80.7%)였지만, 2012년 이후에는 위안화(57.9%)와 미국 달러(3.4%) 사용이 눈에 띄게 늘며 원화 사용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5


더 이상 ‘장군님 만세’를 외치지 않는 장마당 세대

요즘 젊은 청년들은 정권에 대한 충성보다는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북한에서 돈을 많이 벌게 된 신흥 부유층을 ‘돈주’라고 합니다. ‘돈의 주인’의 줄임말이에요. 규리님의 경우가 돈주의 한 사례죠. 장마당이 활성화되며 북한은 현재 돈주가 많아지고 있어요.


행복의 조건은 돈이 아닌 자유였다

길을 걷다가 단속반에 의해 헤어스타일에 대한 지적을 받거나, 핸드폰을 뺏긴 채 문자를 읽히는 일은 일상다반사였어요.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매일 어머니와 몰래 보는 ‘6시 내 고향’, ‘한국인의 밥상’ 속 편안한 삶과는 정반대로 느껴졌어요. 자연스럽게 현재 자신의 삶을 벗어나 TV 속 한국의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규리님은 어머니를 설득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배고파서가 아닌,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장마당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죠.

반면 남한 청년 주긍정님은 크리에이터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 자유가 필요했다고 해요. 소위 말하는 ‘의식주’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밥벌이를 위한 아르바이트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었죠. 둘의 상반된 상황은 남북한 청년의 삶이 더 다양하고 복합적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바쁜 와중에도 가슴에 꽂히는 “외국인이세요?”라는 말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규리님는 생활비를 위해 ‘당근’으로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구했습니다. 한국인의 시선이 두려워 차마 북한에서 왔다고 밝힐 수 없었기에, 사장님의 ‘외국분이세요?’라는 질문에 ‘중국 혼혈’이라고 답했어요. 그렇게 외국인치고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상품과 외래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규리님는 ‘후레쉬 하나 주세요’를 알아듣지 못해 ‘외국인이세요?’라는 짜증 섞인 질문을 또다시 듣고 맙니다.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도 ‘외국분’이란 말에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저도 이제 당당한 한국 국민이잖아요. 신분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왜 자꾸 외국인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었습니다.”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규리님의 롤모델은 과거에도 지금도 드라마 <메이퀸>의 주인공, ‘천해주’입니다. 극 중 천해주는 누구보다도 극심한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 인물로, 결국에는 성공을 이루어내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요. 규리님 역시 배 선주로서 힘든 일을 해온 경험이 있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천해주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았다고 해요. 드라마를 10번, 20번 넘게 반복해서 보며 ‘저 사람도 저렇게 했는데, 나는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점점 천해주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를 롤모델로 삼았어요.

규리님이 한국에 온 지는 이제 1년 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한국에서 원하던 삶을 이루었을까요? 아직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보다는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해요. 북한과는 다른 교육에도 적응해야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많이 읽으며 한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갓생’이란 나답게,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압받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삶이 기본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께서 당연하게 누리고 계신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이전과는 다른 개념으로 한국행을 택하는 북한 청년들

모든 청년의 선택에는 더 나은 삶을 향한 본능적인 열망뿐 아니라, 각기 다른 배경과 맥락이 존재해요. 경제적인 이유, 개인적인 꿈, 가족과의 관계나 시대의 흐름도 함께 얽혀있죠. 어떤 하나의 이유로 쉽게 설명되거나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탈북’이라는 단어의 고정된 이미지, 그 안에 담긴 삶의 궤적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세밀합니다. 누가 왜 떠났는지보단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삶을 꿈꾸는지를 들어보는 일이 우리에겐 더 중요해요. 변하는 건 제도나 정책만이 아니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 그리고 삶의 방식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야 하고, 조금 더 오래 귀 기울여야 해요.

북한 청년들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청년으로서의 고민과 선택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를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찾아가는 북스토리 토크콘서트>는 오는 12월까지 진행됩니다. 다양한 북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문화충동 인스타그램 공지 사항을 확인해 주세요.

링크(LiNK) 한국지부 블로그 -장마당 세대는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북한을 떠납니다 | 찾아가는 북스토리 토크콘서트


  1. 오누르 에렘. 2024 "세계 이주민의 날: 2025년 예상되는 전 세계 이주민 이동 추이는?" BBC News 코리아
  2. 링크(LiNK). 2024 "북한 여성의 결혼과 출산: 북한도 저출산 대책을 고심 중이다" 링크(LiNK)
  3. 주성하. 2023 "졸업식 다음날 서울로 유학형 탈북을 했어요”[주성하 기자의 북에서 온 이웃]" 동아일보
  4. 김세로. 2022 "[평양 핫라인] "성적 외에 사상·성분도 본다" 북한의 대학 입시" MBC 뉴스
  5. 통일부. 2024 "북한 경제·사회 실태인식보고서"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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